구원의 서정 2
구원의 서정 2에서는 개혁주의 신학이 말하는 중생과 믿음이란 무엇인가?
중생
중생이란 인간 안에 새로운 영적 생명의 원소(Principle)를 주입하고 성려의 영향 아래 하나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변화로, 영혼의 지배적 성향이 근본적으로 변화는 것이다.
즉, 중생 (rgeneration)이라고 하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초기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중생을 우리가 전적으로 새롭게 되는 것, 즉 돌이킴과 성화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칼빈은 중생을 회심과 성화를 포함하는 전 과정으로 이해하여 포괄적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최근의 개혁주의 신학은 성화와 구별하여 오직 성령에 의해 새로운 생명이 심기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생을 이해하였다. 즉 새 생명을 하나님에 의하여 부여받는 것으로 중생을 이해하였다.
중생의 문제를 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인간론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이다. 만일 부분적으로 부패하였다면 즉 인간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킬 능력을 지녔다면, 중생에 대한 다른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실제로 철저하게 부패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기에 중생은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것이다.
중생은 철저한 수동적 출생이며 하늘로부터, 즉 하나님에게서 주어지는 사건이다. 중생은 하나님과 인간이 협력하여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성령 하나님이 중생의 유일한 행위자이심을 알 수 있다.
믿음
알미니우스주의는 믿음을 단지 사람의 행위로만 본다. 그러나 성경은 참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그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증거 한다(마11:27; 15:13; 16:16~17; 요 6:44).
회개가 주의 은혜로 뒤를 돌아보는 것이라면, 믿음은 은혜로 말미암아 앞을 내다보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믿음은 그 양상에 따라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종류를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성경은 “역사적 믿음”에 대해 연급하고 있는 이 신앙은 아무런 실제적인 도덕적, 영적 반응 없이 성경 진리를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믿음은 진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다(행 26:27~28; 약 2:19).
성경은 “일시적 믿음”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중생한 자의 마음에는 뿌리박지 못하는 것으로서, 양심의 어떤 자극과 감정의 흥분으로 종교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일시적이라 칭하는 이유는 영속적 성질이 없으므로 시련과 핍박 시에는 믿음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마13:20; 히 6:4~6; 담전 1:19; 요일 2:19).
성경은 또한 “기적적인 믿음”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마 8:11~13: 17:20;막 16:17~18; 요 11:22, 40; 행 14:9), 이 믿음은 “구원적 믿음”을 수반할 수도 있고, 수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구원적 믿음”은 성령에 의해 마음속에 일어나는 복음 진리에 대한 개인적 확신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진실한 신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진정한 구원적 /믿음의 요소를 3가지로 구분한다.
- 지적 요소
칼빈은 "믿음이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견고하고 확실한 지식인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시는 약속의 진리에 기초하며, 성령에 의해 우리 마음에 계시가 되며 확인된다."라고 했으며, 메이천(J. G, Machen)은 믿음에 대한 오늘날의 비지성적 관념을 비평하면서, "모든 참된 믿음은 지적 요소를 가진다. 어떤 인격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그 인적에 대한 지식을 가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라고 강조한다.
로마 가톨릭은 '명시적 믿음'(explicit faith)에 대해 말할 뿐만 아니라, 또한 묵중적 믿음 (implicit faith)에 대해 가르쳤다. 묵종적 믿음이란, 신자가 종교의 몇 가지 기초적 진리들에 대해서는 알아야 하지만,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지식 없이, 교회가 가르치는 것을 믿으려는 태도만 가지고서 믿는 믿음이다. 그러나 성경이 참된 믿음은 확실한 지식을 동반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기 때문에 지식 없는 믿음은 참믿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의 믿음의 지식이 필요한가? 이 지식은 신자에게
복음의 기본적 진리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개념을 제공하기에 충분해야 한다.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그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그리고 왜 하셨으며, 또 그가 장차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실 것인지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 감정적 요소
믿음은 복음 진리에 대해 감정적으로 기쁘게 동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은 이런 요소에 대해 구분해서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요소가 구원받는 믿음에 관한 지식 속에 실제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의지적 요소
이 요소는 구원받는 믿음의 으뜸가는 요소로서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잘 드러냅니다(갈 5:6; 약 2:17, 26).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반지만 행위로 그 구원을 확증한다. 성도의 의롭고 선한 행위는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의 확실한 표가 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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