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죄악된 옛 본성을 벗고 죄와 더러움에서 분리되어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하게 되어가는 것. 즉, 죄사함을 얻고 구원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성화의 본질
1 하나님의 초자연적 사역이다.
성화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다.
성경은 성화의 초자연적 성격을 몇 가지 방식으로 제시한다. 성경은 성화가 하나님 사역(살전 5:23; 히 13:20,21)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연합의 열매(요 15:4; 갈 2:20; 4:19) 안으로부터 인간에게 역사 되며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해 인간의 사역으로 여겨질 수 없는 사역(엡 3:16; 골 1:11) 이라고 서술한다 .
또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미덕의 발현이 성령의 역사라고 언급한다(갈 5:22). 성화는 결코 인간의 영적 발전에 있어서 자연적 과정으로 제시되거나,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서 행해지듯 인간의 업적으로 격하되어서는 안 된다.
2,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성경에서는 성화의 두 부분이 다음과 같이 제시되고 있다.
- 옛사람, 죄의 몸의 극복
이러한 성경 용어는 죄로 인한 인간 본성의 부패와 타락이 점진적으로 제거되게 하는 하나님의 행위를 나타낸다. 이는 종종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으로 표현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연관된다. 옛사람은 죄로 인해 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본성이다(롬 6:6; 갈 5:24). 갈라디아서의 문맥에서 바울은 육신의 행위와 성령의 행위를 대조시키며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라고 말한다. 이는 그들의 경우 성령이 지배력을 행사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을 위해 창조된 새사람의 소생
성화의 전반부가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이 부분은 적극적이다. 이는 거룩한 성향이 강화되고 거룩한 실천들이 증대되고 새로운 생의 과적이 창출되고 촉진되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죄의 옛 구조가 점진적으로 파괴되고, 그 대신 하나님의 새로운 구조가 건조된다. 성화의 이 두 부분은 연속적이라기보다는 동시적이다. 새로운 건물이 점진적인 건축 과정이 옛 건물이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 지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지연되어야 한다면 이는 결코 이생에서 시작될 수 없을 것이다. 옛것이 점진적으로 해체됨에 따라 새것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유독한 냄새로 가득 채워진 집을 환기하는 것과 같다. 옛 공기가 빠져나가게 됨에 따라 새로운 공기가 들어온다. 이러한 성화의 적극적인 측면은 종종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입음이라고 불린다(롬 6:4, 5; 골 2:12; 3:1 ,2). 이것이 인도하는 새로운 생은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라고 불린다(롬 6:11: 갈 2:19)
3. 인간 전체 즉 목과 영혼, 지성과 감성과 의지 전체에 영향을 준다.
이는 성화의 본질에서 유래한다. 왜냐하면 성화는 인간의 내면적인 삶에서, 심령에서 일어나는데, 인간의 내면적인 삶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인간 전체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내면적 인간이 변화된다면 주변부에서도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더욱이 성경은 성화가 몸과 영혼 전체에 영향을 준다고 명백하고 분명하게 가르친다(살전 5:23; 고후 5:17; 롬 6:12; 고전 6:15,20). 여기서 몸은 죄악 된 경향과 습관과 감정이 표현되는 죄악 된 영혼의 기관 혹은 도구로 고려되고 있다. 몸의 성화는 특별히 죽음의 위기와 죽은 자의 부활에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성경에서는 성화가 영혼의 모든 능력 혹은 모든 기능 즉 오성(렘 31:24; 요6:45), 의지(겔 36:25, 27; 빌 3:13), 감정(갈 5:24), 양심(딛 1:15; 히 9:14)에 영향을 준다고 가르친다.
4. 신자가 협력하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인간이 성화의 사역에 참여한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성화의 사역에 있어서 독립적인 행위자가 되어 성화를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의 사역이고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사역으로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성령에 기도와 지성으로 협력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이성적 존재로서 인간이라는 도구를 통해 부분적으로 성화의 사역을 수행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은 1) 인간이 인생의 함정을 회피하는 데 있어서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암시하고 있는 유혹과 사악한 행동에 대한 반복된 경고(롬 12:9, 16, 17; 고전 6:9,10; 갈 5:16, 23), 2) 거룩한 삶에 대한 계속적인 권면에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은 신자가 그의 생에 있어서 도덕적이고 영적인 개선을 위한 수단들을 강구하는 데 있어서 근면해야 한다는 것을 내포한다(미 6:8; 요 15:2, 8, 16; 롬 8:12, 13; 12:1, 2, 17; 갈 6:7, 8, 15).
성화의 의미
성화의 모형은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성화는 하나님의 역사인 동시에 우리의 능동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성경은 성화시키는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시켜 자기의 형상대로 회복시킨다고 가르친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형상 회복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서 더욱더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 형상의 회복은 직설법인 동시에 명령법이다.
성화와 관련하여 요한 웨슬리는 중생과는 별도로 두 번째 변화시키는 은혜의 역사를 주장하였다. 이런 웨슬리의 견해는 보통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나중에 웨슬리 주의자들은 여기에 '두 번째 축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웨슬리가 과연 이 세상에서의 100% 완전한 성화를 말하였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어쨌거나 우리의 성화의 삶에 있어 하나의 목표를 제시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완전함에다가 중생의 교리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설명하는 성경적인 핵심 교리의 지위를 부여하려 제시한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성령께서 믿음에 응답하셔서 지금 여기서 현재의 완전함을 주신다는 웨슬리의 주장은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기 어렵다.
성화는 일생의 과정이다.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일종의 전투이다. 다이어트 비법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자 전략과 같이, 우리는 손쉬운 성취를 약속하듯 현혹하는 영성의 방식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와 투쟁하는 고통은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다. 우리가 자신의 지속적인 죄성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닌 증거가 아니라 도리어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이다!
가끔 성화는 단지 성도 개개인에게만 관계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심각한 잘못입니다. 성화는 중요한 사회적 공동제적 측면을 가진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그리스도의 주권을 명백하게 설명한다.
"그리스도가 '그것은 나의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주의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그의 것인 아인 것이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관심 없이 성화는 완성되지 않는다. 성화의 성장은 환경에 관한 관심을 요구한다. 성화는 자신의 변화를 넘어 세계의 빈곤에 대하여 책임 의식을 가지는 것이며 인류복지의 향상을 위한 사업에도 관계가 있다. 성화는 세계평화와 군비경쟁의 중지를 위한 계속적인 노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2023.05.12 - [조직신학] - 회심 & 칭의(구원의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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